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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조선 초대 단군왕검과 네 가지 업적
단군왕검의 건국과 그 덕화
단군왕검은 아버지는 단웅檀雄이요 어머니는 웅씨왕熊氏王의 따님으로서
BCE 2370년 5월 2일에 태어나셨다.
14세 되던 해에, 웅씨왕이 그 신성함을 듣고 비왕裨王으로 천거함으로써
대읍국大邑國의 국사를 맡아 다스리게 되었다.
웅씨왕이 전쟁에서 죽자 단군왕검은 천제天帝의 아들로 추대되었고,
무진(BCE2333)년 10월 3일에 오가의 우두머리로서 무리 8백 명을 거느리고
삼신상제님께 천제를 지내고 단군의 지위에 올랐다.
도읍을 아사달에 정하였고 나라이름을 조선이라 하였다.
단군왕검은 신인의 덕이 있어서 그 덕화가 널리 퍼져나갔는데
온 누리를 덮어 멀리 탐랑耽浪까지 미쳤다.
이러한 단군의 성덕을 여기서 네 가지로 구분하여 소개해 본다.
산동성 무씨사당 석실에 있는 '단군의 성덕' 을 그린 화상석 그림이다.
단군왕검의 덕화에 힘입어 백성들이 '도랑을 파고 밭길을 내며, 농사짓기와 누에치기를 하며 고기잡이와 사냥을 하고' 있다...
⓵ 국내와 황하의 홍수를 다스리심
구약성서에 보이는 노아의 홍수가 동방에서도 일어났다.
단군세기에 고대조선에서 일어난 홍수에 대해 다음과 같이 적고 있다.
재위 50년 정사(BCE 2284)년에 홍수가 범람하여 백성이 편안하게 살 수 없게 되었다.
왕검께서 풍백 팽우彭虞에게 명하여 물을 다스리게 하시고,
높은 산과 큰 하천을 잘 정리하여 백성이 편안히 거처하게 하셨다.
우수주牛首州에 이 내용을 기록한 비가 남아 있다.
안경전 역주, 환단고기 98-99
단군왕검 재위 50년 때에 지금의 만주지역에서도 대 홍수가 난 것이다.
그렇지만 조정에서 물을 잘 다스려 백성들이 편하게 거처할 수 있게 하였다.
우수주에는 대 홍수를 기록한 비석이 남아 있었다.
우수리강이라는 지명이 지금도 러시아와 경계선 상에 남아 있는 걸로 봐서,
우수주는 송화강 일대의 길림성 어느 지역으로 추정해볼 수 있다.
대 홍수는 국내만이 아니라, 중원의 강과 하천에서도 넘실거리며 범람했던 모양이다.
중국의 사서에는 고대에 일어난 대홍수에 관한 설화가 많이 전한다.
그 주된 줄거리는, 순임금이 홍수 통치에 실패한 곤(鯀)을 처형하고
우禹를 세워 치수사업에 성공했다는 내용이다.
그러면 우는 아버지 곤이 실패했던 치수사업을 성공시킬 수 있었던 요인이 뭘까?
단군세기는 그 답을 제공하고 있다.
재위 67년 갑술(BCE 2267)년에 왕검께서 태자 부루扶婁를 보내어
우순虞舜이 보낸 사공(司空=禹)과 도산에서 만나게 하셨다.
태자는 오행치수법을 (禹에게) 전하였다.
안경전 역주, 환단고기, 98-99
단군세기의 내용은, 중원의 왕조에서는 곤을 처형해야 할 만큼 치수사업에
심대한 곤란을 겪고 있었는데 단군왕검이 태자 부루를 파견 오행치수법을 우에게 전함으로써
물난리를 극복할 수 있었다는 것이다.
단군세기의 이러한 기록을 믿을 수 있는가?
이에 대해 중원 측의 기록에서는 어떻게 나오는가?
9년 홍수를 다스리던 우가 8년 동안이나 공을 이루지 못하고 매우 걱정하여 형산에
이르러 백말을 잡아 하늘에 제사하여 성공을 빌었다.
그랬더니 꿈에 붉은 옷을 입은 남자가 스스로 ‘현이의 창수사자’ 라 칭하면서
우에게 “신서가 있으니 재계하고 이를 내어 보라” 하므로 우가 그렇게 하여
금간의 신서를 얻어 오행통수의 이치를 알았다 (오월춘추 월왕무여외전)
중원 측의 기록인 오월춘추는 부루 태자를 ‘현이의 창수사자玄夷蒼水使者’ 라고
바꿔치기 해서 말할 뿐 나머지는 단군세기 내용과 다른 데가 없다.
우가 현이의 창수사자에게 오행통수의 이치를 전해받아서 치수에 성공했다고 기록하고 있는 것이다.
이만하면 단군세기의 기록을 믿을만 하지 않는가.
서경'홍범’ 에서는 “하늘이 우에게 홍범구주를 주셨다(天乃錫禹洪範九疇)” 라고 하여
부루 태자를 이번에는 ‘하늘(天)’로 바꿔 말하고 있다.
둘 다 상국上國을 숨기려는 기도를 한 것이겠지만 고조선을 당시
우虞나 하夏 등의 중원왕조에겐 ‘하늘’ 같은 나라라고 여기고 기술한 것으로 본다면
틀린 일만도 아니다.
⓶ 마리산에 참성단을 세우심
참성단은 단군조선부터 근세 조선에 이르기까지
삼신상제님께 천제天祭를 지내온 제천 성소이다.
강화도 마리산에 있는 참성단은 단군왕검 시기에 축조되었다고 전해진다.
재위 51년 무오(BCE 2283)년에 왕검께서 운사雲師 배달신에게 명하여
혈구穴口에 삼랑성三郎城을 건설하게 하시고,
마리산에 제천단을 쌓게 하였는데 지금의 참성단塹城壇이 곧 그것이다.
안경전 역주, 환단고기, 98-99
참성단은 삼랑성과 함께 남북한을 통틀어 가장 오래된 단군 유적이다.
무엇보다 참성단은 하늘에 제사를 올린 제천단으로써,
한민족 고유의 상제문화가 녹아 있다는 데 특별한 의의가 있다.
또한 참성단은 지천태地天泰 원리로 축조되었는데 이는
주역周易보다 1천년 이상 앞선 역易의 논리 도입이다.
주역의 11번째 지천태괘는 음양이 뒤집어져서 아래위가 상교相交, 화합하는
상을 보여주는 후천을 상징하는 이상적인 괘이다.
참성단 건축에 이 지천태의 원리가 도입된 것은, 한민족이 후천 이상세계를 건설하게 된다는
축복의 의미를 담은 것으로라 이해할 수 있다.
마리산 참성단은 지천태의 원리를 도입하여 축조하였다.
참성단 축조에 괘상의 논리를 사용한 것은 주역의 괘상 논리보다 1천년 이상 앞선 것이라 할 수 있다...
이 강화도 삼랑성도 BCE 2283년에, 단군왕검께서 배달신에게 명하여 쌓게 하신 것이다...
⓷ 삼한 관경제를 시행하심
고조선의 초대 단군 왕검은 나라를 진한, 번한, 마한 삼한三韓으로 나누어 다스렸다.
단군이 나라를 셋으로 나눠 다스린 것을 삼한관경제라고 한다.
이에 앞서 왕검께서 천하의 땅을 일정한 지역으로 경계를 정해 삼한三韓으로 나누어 다스리셨다.
삼한에는 모두 5가五家 64족族이 있었다.
안경전 역주, 환단고기, 100-101
단군왕검은 왜 나라를 셋으로 나눠 다스렸을까?
그 이유는 단군왕검이 국가통치 원리를 배달국에서 계승했기때 문이다.
배달국의 개조인 환웅천황은 신교의 삼신오제三神五帝 사상을 바탕으로 하여
삼백三伯과 오사五事제도를 만들어 국가를 경영하였다.
단군왕검은 이를 계승하여 삼한관경제三韓管境制와 오가五加 제도로써 나라를 통치하였다.
삼신일체三神一體의 원리, 즉 한명의 단군과 두 명의 부단군이 나라를 셋으로 나누되
일체로서 다스리고자 하였던 것이다.
삼한은 진한과 번한, 마한으로써, 진한은 단군왕검이 직접 통치하였고,
번한과 마한의 초대 통치자는 치두남과 웅백다였다.
⓸ 황하의 동쪽지역에 분조分朝를 설치하심
중원문명을 건설한 이들은 모두 동이족이었다.
이 점은 현재의 중국 교과서에서도 크게 부인하지 않는다.
배달국 시기 때 동방의 밝은 문화를 황하유역에 가져가 널리 전파한 이는
태호복희씨와 신농씨 같은 인문 시조들이 었다.
동이족의 황하 개척 프런티어는 이때 시작되었다.
한편 신인의 덕이 있는 단군왕검이 일어나자 이전의 시기에 황하유역에 퍼져 있던
동이인들이 풀잎 눕듯이 단군 조정에 와서 앞 다퉈 귀속하였다.
(왕검께서) 나라의 경계를 살펴 정하시니 유주(幽州 : 오늘날 하북성)와
영주(營州 : 오늘날 산동성 북부지역) 두 주가 우리 영토에 귀속되고,
회수와 태산 지역의 제후들을 평정하여 분조를 두어 다스렸는데 다스리실 때
우순을 시켜 그 일을 감독하게 하셨다.
안경전 역주, 환단고기, 98-99
단군조선은 유주와 영주를 귀속시켜 우리 강역으로 하였고,
회수와 태산 지역의 제후들을 평정하여 분조를 두어 다스렸는데
우순虞舜을 시켜 그 일을 감독하게 하였다.
태백일사 삼한관경본기에는 분조를 두고 통치한 이야기가 좀 더 나온다.
이때 감우소監虞所를 낭야성琅耶城에 설치하여 구려九黎 분정에서 논의된 일을 결정하였다.
서경에 이른바 “순임금이 동쪽으로 순행하여 멀리 산천을 바라보며 제사 지내고,
동방 천자를 알현하였다(東巡望秩 肆覲東后)” 라는 구절은 바로 이 내용을 말한 것이다.
진국辰國(단군조선)은 천제天帝의 아들이 다스리므로 5년에 한 번 낭야를 순행하였으나,
순은 제후이므로 진한에 조근朝覲한 것이 네 번이었다.
안경전 역주, 환단고기, 460-461
단군조선 시기에 동아시아에 있어서 천제의 아들, 곧 천자天子는 단군왕검이었다.
당시 황하유역의 약소한 나라의 임금(王)이던 우순은 동쪽으로 순행하여 동방 천자를 알현했고
4번이나 단군 조정에 조근해야 했다.
우리가 서경을 읽어보면 순임금의 이러한 처지를 쉽게 확인할 수 있다.
중원에서 천자가 탄생한 것은 시황제 때가 처음이었다.
은과 주를 세운 창업군주 성탕왕과 문왕, 무왕도 모두 왕이라는 호칭을 썼다.
춘추전국 시대를 쟁패한 패자들도 모두 제후에 불과했다.
하은주의 왕들이 부분적으로 천자, 제帝라 칭해지기도 했는데 이는 후대의 사가들이
역사왜곡을 자행하며 장난친 것이라 할 수 있다.
낭야성은 본래 중국의 동부에 고조선의 분조가 설치된 곳의 지명이다.
위치는 조금 다르지만, 지금 낭야대는 진시황의 석각과, 진시황의 순행을 기리는
기념물이 설치된 장소로 더 알려져 있다...
단군왕검의 붕어 그러나 재위에 계신지 93년에 이르러 단군왕검께서 붕어하셨다.
이 해(BCE 2241년) 3월 15일에 단군왕검께서 봉정에서 붕어하시니 교
외 십 리 되는 곳에 장사지냈다.
모든 백성이 부모를 잃은 듯 슬퍼하였고, 단기(檀旂)를 받들어 아침저녁으로 모여 앉아
경배하며 항상 단군왕검의 덕을 가슴에 품고 잊지 않았다.
안경전 역주, 환단고기, 100-101
댕기머리는 초대 단군왕검의 붕어를 추모하고 그 성덕을 기리는 것에서 유래하였다.
모든 백성들이 부모를 잃은 듯 슬퍼하였고 댕기머리를 땋는 것으로써 그 덕을 만세에 기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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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고) > 진한(진조선)' 카테고리의 다른 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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