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고)

댕기의 역사와 의미 : 한민족의 전통 머리 장식

대한사랑 2026. 7. 5. 04:46

https://youtu.be/1X1_YatHLrg

 

한민족이 오래전부터 해 왔었던 머리의 댕기...

고려시대 행촌 이암 선생이 쓴 '단군세기에 그 유래가 나옵니다.

 

환기 4957, 신시개천 1657, 단기 93, 기원전 2241 3월 15일에 단군왕검께서 봉정에서 붕어 하시니 교외 십 리 되는 곳에 장사 지냈다.

모든 백성이 부모를 잃은 듯 슬퍼하였고 단기 를 받들어 아침저녁으로 모여 앉아 경배하여 항상 단군왕검의 덕을 가슴에 품고 잊지 않았다.

 

태자 부루께서 즉위 하였다.

 

수천 년 동안 어린아이의 머리에 고운 비단 헝겊을 달아 주는 '댕기는 바로 초대 단군왕검을 추모하여 받든 조기인 단기가 변형된 것이 었습니다.

 

인터넷에서 '댕기'에 대한 것을 찾아 보니 조선시대 정약용 선생의 풍속고가 정확하게 댕기에 대한 설명을 하고 있습니다.

 

두산백과를 보면 머리를 장식하기 위하여 사용한 자줏빛 ·검은빛의 헝겊. 좁은 뜻으로는 미혼자의 땋은 머리 끝에 드린 헝겊을 가리킨다.

헝겊으로 머리를 장식하는 습속은 당서 동이전 신라조에 “여자는 아름다운 머리 띠를 머리에 둘러 아름다운 구슬과 빛깔 좋은 비단으로 장식한다”고 기록되어 있어 삼국시대에도 있었던 것으로 짐작된다.

조선시대의 댕기는 용도에 따라서 쪽댕기·큰댕기·앞댕기·도투락댕기·말뚝댕기·제비부리댕기 등으로 구분할 수 있다고 나옵니다.

 

또한 그 설명을 보면,

 

쪽댕기는 쪽찐머리를 곱게 하기 위하여 사용하는 댕기이다.

젊은 사람은 빨강, 나이든 사람은 자주, 과부는 검정, 상제는 흰색이었다.

 

얹은머리의 자적댕기, 의식 때의 큰머리·어여머리를 할 때의 매개댕기도 쪽댕기에 속한다.

 

매개댕기는 자줏빛 명주에 솜을 넣어 길고 통통한 끈처럼 만든 댕기이다.

 

큰댕기는 궁중·양반집에서 신부가 예장할 때에 사용하는 댕기이며 도투락댕기라고도 한다.

짙은 자줏빛 비단이나 사로 만들어 뒤에 길게 늘이기 때문에 뒷댕기·주렴이라고도 한다.

나비는 10 cm 정도로 두 갈래이며, 윗부분은 삼각형으로 붙어 있고, 길이는 치마 길이보다 약간 짧다.

전체에 금박을 박아 화려하며, 위에는 석웅황과 옥판을 달고 밑에는 석웅황·밀화 등으로 만든 매미를 5마리 정도 달아 두 갈래의 댕기를 연결하였다.

경기 이외의 남쪽이나 북쪽 지방에서는 금박 대신 비단색실로 장식하고 칠보꽃을 화려하게 둘레에 돌려 붙이기도 하였다.

 

북서 지방에서 혼례에 사용하였다는 고이댕기도 큰댕기의 일종이다.

앞댕기는 혼례 때 큰댕기와 짝을 이루어 양쪽 어깨 위에서 앞으로 늘이는 댕기이다.

 

큰 비녀의 양쪽 여유분에 적당한 길이로 맞추어 감아 양 어깨 위에 드리운다.

나비는 5 cm 내외이며 금박을 박았고 양끝에는 진주·산호주 장식을 하였다.

 

도투락댕기는 혼례 때에 신부가 드리는 큰댕기를 지칭하기도 하나, 흔히 그와 형태가 같은 소형의 어린이용 댕기를 일컫는 예가 많다.

긴 직사각형의 댕기를 2폭이 나란하도록 반으로 접되, 접힌 위가 세모꼴이 되게 한다.

기에 조그마한 끈을 달아 머리가 채 자라지 않은 어린이의 뒤통수에 바짝 달아맨다.

 

말뚝댕기는 어린이용 댕기로, 도투락댕기를 맬 시기는 지나고 제비부리댕기를 드리기에는 아직 이른 때에 사용하였다.

긴 직사각형의 댕기를 반으로 겹쳐 접어 윗부분에 끝을 달아 뒤통수에 달아맨다.

도투락댕기와는 달리 반으로 접힌 윗부분이 네모꼴이다.

 

제비부리댕기는 미혼자의 땋은머리에 드리는 댕기이다.

처녀들은 빨강, 총각은 검정을 사용하였는데 크기는 연령에 따라 다르다.

말뚝댕기 다음 시기에 사용하였으며 처녀들의 댕기는 화려하게 금박을 박았다.

그리고, 한국민족문화대백과에는 땋은 머리 끝에 드리우는 장식용 헝겊. 한자어로는 취음하여 ‘당지’라 쓴다.

머리를 흩어지지 않게 묶기 위해서는 헝겊이나 끈이 필요하였을 것이며, 따라서 댕기는 여자의 수발과 함께 생겨났다고 할 수 있다.

북사 열전에 백제의 처녀는 머리를 뒤로 땋아 늘어뜨리고, 부인은 두 갈래로 나누어 머리 위에 얹었다고 하고 있다.

신라에서는 부인들이 머리를 땋아 머리에 두르고 비단과 진주 등으로 장식하였다는 기록이 있다.

고구려고분벽화에서도 끈으로 장식한 모습이 있어, 고구려·백제·신라의 삼국이 모두 댕기를 사용하였음을 볼 수 있다.

고려도경 부인조에 처녀는 홍색 나로 머리를 묶고, 남은 머리는 뒤로 내려뜨렸으며, 출가하면 머리를 틀어 나로 묶고 작은 비녀를 꽂았다고 하였으니, 이는 제비부리댕기와 쪽댕기를 연상시킨다.

 

고려 후기는 몽고의 영향을 받게 되면서 변발이 일반화되어 댕기는 필수품이 되었다.

 

조선시대도 처녀와 총각은 물론, 부인의 쪽머리나 얹은머리도 변발을 하게 됨에 따라, 댕기는 더욱 중요한 수식품의 구실을 하였다.

 

개화기 이후 단발머리와 서구식 리본이 들어오면서 댕기는 차차 사라지고, 요즈음 특수한 예복을 입는 경우에만 사용되고 있다.

 

댕기는 실용성과 장식성을 겸하며, 신분이나 길흉사에 따라 색과 재료를 달리 사용하기도 하고, 가식된 문양에 따라 상징성을 가지기도 한다.

 

댕기는 용도에 따라 여러 가지가 있으며, 그 종류는 다음과 같다.

 

우선 예장용으로, 떠구지댕기는 궁중의식에 비·빈이 큰머리, 떠구지머리에 사용하였던 자주빛 댕기이다.

 

매개댕기는 궁중의식 때 어여머리에 더하여 떠구지를 할 때 연결부분에 사용하는 너비가 좁은 검은 댕기이다.

 

도투락댕기는 큰댕기 또는 주렴이라고도 한다.

예장하였을 때의 뒷댕기로서 검은자주색 비단류로 만든다. 보통 댕기보다 넓으며 길이는 치마길이보다 약간 짧고 두 갈래로 되어 있으며, 겉에는 금박을 찬란하게 하였다.

윗부분에는 석웅황이나 옥판을 달고, 아랫부분에도 석웅황·밀화·금패로 만든 매미 5마리를 달아 두 갈래진 댕기를 연결해주었다.

 

서북지방에는 이와 비슷한 것이 있어 고이댕기라고 하였다.

 

드림댕기는 혼례복에서는 뒷댕기인 도투락댕기와 짝을 이루는 앞댕기로, 다른 예복에서는 뒷댕기 없이 이 앞댕기인 드림댕기만을 하는데, 검은자주색에 금박을 하였으며, 갈라진 양끝에는 진주·산호주 등의 장식을 하였다.

 

그리고 일반용으로, 제비부리댕기는 변발한 처녀나 총각이 하였는데, 처녀는 붉은색, 총각은 검은색이었다.

또, 총각은 포백으로 하고 아무런 장식이 없는 것이었으나, 처녀는 비단으로 하여 때로는 금박을 하기도 하고, 댕기고에 옥판이나 옥나비 또는 칠보나비를 붙이기도 하였다.

 

도투락댕기는 예장용의 도투락댕기와 같은 것을 어린이용으로 만든다.

뒷머리가 짧으므로 댕기 위에는 조그만 깃을 달아 뒤통수 귀밑머리 밑에서 바짝 달아주게 되어 있다.

 

말뚝댕기는 어린이용으로 도투락댕기와 비슷한 것인데, 도투락댕기의 시기를 지나 제비부리댕기를 드리기 전에 하였다.

 

쪽댕기는 쪽찔 때 사용하는 것으로, 머리를 땋아가다가 끝 부분에서 끼워 넣어 쪽이 곱게 틀어지게 하였다.

색은 젊은 사람은 홍색, 나이가 든 사람은 자주색, 과부는 검정색, 상제는 흰색이었으며, 8,90세 노인도 내외가 함께 생존하고 있으면 자주댕기를 하였다.

 

끝으로 궁녀용으로, 네가닥댕기·두가닥댕기는 나인들이 자주색의 무늬 있는 사로 만들어 새앙머리에 매었다.

 

팥잎댕기는 팥잎처럼 가장자리가 말린다 하여 붙여진 이름으로, 궁중의 무수리와 세수간의 나인들이 사용하였다.

 

이번엔 역사로 본 전통머리를 알아보겠습니다.

 

증보문헌비고에 “단군 원년 나라 사람들에게 머리를 땋고 개수하는 법을 가르쳤다.”라는 내용과 “삼한의 부인은 반발하였는데 모두 아계를 찌었고 여발을 늘어뜨렸으며 여자는 말아서 뒤에 드리운다.”라는 기록을 통하여 삼국시대 이전에는 머리를 빗어 정리한 것을 알 수 있다.

 

고려시대에는 머릿수건이나 비녀 모양의 장식과 머릿수건이나 머리띠에 천을 사용한 모습 등을 찾아볼 수 있다.

그러므로 댕기의 기원은 머리를 빗어 정리하고 장식하기 시작하면서부터 사용된 것으로 보아야 할 것이다.

 

신라의 댕기는 “여자는 미발을 머리에 동이고 빈수 주채로서 장식한다.”라는 기록을 통해 댕기 사용을 유추해 볼 수 있다.

 

백제도 “미혼녀는 머리를 땋아 편발 머리 위에 서리고 한 가닥을 늘어뜨려 장식하고 기혼녀는 양쪽으로 나누어 빗었다.”라는 기록으로

 

고구려의 부녀자들은 말갈기 같이 만든 머리를 오른쪽 어깨 위에 드리웠다고 하며 삼국 모두 댕기를 사용했음을 알 수 있다.

 

조선시대에는 여러 가지 머리 모양을 하기 위하여 다양한 가체와 댕기를 사용하였고 그 종류가 다양하다.

 

고종 32년, 1895년 단발령 이후로 댕기의 착용은 점차 사라지게 되었고 1900년대에 들어서면서 우리나라 여성들은 챙머리를 하기도 하였으나, 한복을 입었던 대부분의 여성들은 쪽머리나 댕기를 계속하였다가 1910년 경술국치 후에 한복 착용이 늘면서 여학생들은 한 갈래 혹은 두 갈래로 땋아 그 끝에 자주댕기를 드리웠으나 점차 그 길이가 짧아졌고, 1920년대에 트레머리와 첩지머리가 유행하였다.

 

이후 1934년 이화학당에 단발머리가 오륙년 동안 계속되었다가 1937년 퍼머넌트가 보급되면서 광복 후에는 쪽진머리나 댕기머리를 찾아보기가 어려워졌다.

 

단계, 단기, 단성은 정약용의 풍속고에서

“지금 아이들이 땋은머리를 끝에 드리운 헝겊이나 실은 단계, 단기라 하니, 이는 단군께서 백성들에게 머리 땋은 법을 가르치시고 신령한 성품 닦기를 훈계하였으므로 백성들이 신덕을 추모하여 머리를 땋아 드리우고, 단계라 하며 반드시 거기에 ‘수복강녕’이라고 쓰고 이를 ‘빈다’라고 하고 있어 여기에서는 댕기가 단군을 추앙하는데 생겨난 것”

이라 하고 있다.

 

댕기의 기원에서 살펴보았듯이 오래전부터 사용해 온 것이나 댕기의 한자어는 당을 사용해 왔다.

 

댕기는 조선시대의 화려하고 다양한 수식 가운데 재료가 금속이나 보석이 아닌 유일한 직물 수식이다.

주로 사로 만들어 그 위에 금박이나 보석 등으로 장식하였고, 모양과 빛깔 등도 용도에 따라 달랐다.

 

얹은머리의 자적댕기, 의식 때의 큰머리, 어여머리를 할 때의 매개댕기도 쪽댕기에 속한다.

 

댕기의 특이한 재료로는 닥나무로 만든 한지가 있는데, 남녀노소가 상을 당했을 때 만들어 탈상 때까지 조심스럽게 사용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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